“다행히 올해는 안 아팠어” 하고는 얼른 나무를 톡톡 두드린 적, 사다리 밑으로는 왠지 지나가기 싫었던 적, 거울을 깨뜨리고 마음이 철렁했던 적 —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미신 안 믿어”라고 말하면서도 이런 작은 징크스를 슬며시 따르곤 합니다. 그 유래와, 우리가 왜 그러는지를 들여다보면 사람 마음의 다정한 구석이 보입니다.
몇 가지 유래를 살펴볼까요. ‘나무를 두드리는’ 풍습은, 나무에 깃든 좋은 기운에 기대거나 자랑 끝에 화를 부르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합니다. 사다리 밑을 피하는 것은 실제로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상징적인 까닭도 얹혔지요. 깨진 거울에 ‘7년 불운’을 말하는 서양의 속설은, 거울을 귀하고 혼이 비치는 물건으로 여기던 옛 관념에서 왔습니다. 소금을 쏟으면 왼쪽 어깨 너머로 던지는 풍습, 13일의 금요일을 꺼리는 정서도 비슷한 결이지요. 다만 그 뿌리는 대개 흐릿한 민담이고, 문화마다 다릅니다 — 어떤 곳에서 불길하다는 검은 고양이가 다른 곳에선 행운으로 여겨지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징크스를 놓지 못할까요. 여기엔 또렷한 마음의 까닭이 있습니다. 작은 의식 하나가 불확실함 앞의 불안을 덜고, ‘그래도 내가 뭔가 했다’는 통제감을 주기 때문이지요. 좋은 말을 한 뒤 나무를 두드리는 건, ‘괜히 운을 시험한 건 아닐까’ 하는 찜찜함을 톡 털어 내는 작은 안전판인 셈입니다. 비용은 들지 않고 마음은 가벼워지니, 회의적인 사람조차 가볍게 따르곤 하지요.
여기서 정직하게 짚어 둘 점이 있어요. 징크스는 실제로 무언가를 일으키거나 막지 않습니다. 그 진짜 기능은 ‘감정’에 있지요 — 불안을 살짝 흘려보내는 작은 숨구멍 말입니다. 다만 주의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징크스가 삶을 옥죄거나 도리어 불안을 키운다면, 그때는 가만히 손에서 놓는 편이 좋습니다. ‘가볍게’가 건강한 용량이지요.
그렇게 보면 이런 소소한 의식들은, 불확실함과 함께 춤추는 사람다운 다정한 방식에 가깝습니다. 꽉 움켜쥐기보다 한쪽 눈을 찡긋하며 즐기는 것 — 그것이 징크스를 건강하게 누리는 법이지요. FortuneLeaf의 언제나 그렇듯, 이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불확실한 하루를 다정하게 어르기 위한 한 조각의 즐거움으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