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에서 명당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사신사(四神砂)입니다. 사신사란 기운이 맺히는 자리인 혈(穴)을 둘러싼 네 방위의 산세를 일컫는 말로, 동쪽의 좌청룡(左靑龍), 서쪽의 우백호(右白虎), 남쪽의 남주작(南朱雀), 북쪽의 북현무(北玄武)를 가리킵니다. 네 방위를 지키는 상징 동물의 이름을 붙여, 자리를 사방에서 감싸 보호하는 산들의 짜임을 한눈에 보여 주는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 방위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온 상징 동물이 짝지어져 있습니다. 동쪽의 청룡은 푸른 용, 서쪽의 백호는 흰 호랑이, 남쪽의 주작은 붉은 새, 북쪽의 현무는 거북과 뱀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이 네 동물은 본래 하늘의 별자리를 네 방위로 나누어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져 왔는데, 풍수에서는 그 상징이 땅으로 내려와 자리를 둘러싼 산세에 빗대어 쓰이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사신사의 이름에는 방위와 빛깔, 그리고 그 방위를 지키는 동물의 기운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사신사를 읽는 기준은 자리의 등 뒤를 받쳐 주는 주산(主山)에서 바라본 방향입니다. 곧 자리에 서서 주산을 등지고 앞을 바라볼 때, 왼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청룡, 오른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백호라 부르며, 앞쪽 멀리 마주 보는 나지막한 산을 주작, 등 뒤에서 자리를 받쳐 주는 산을 현무라 합니다. 그러므로 좌청룡과 우백호의 좌우는 절대적인 동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리에서 주산을 등지고 섰을 때의 왼쪽과 오른쪽을 뜻한다는 점을 헤아려야 합니다.
좋은 자리란 이 네 방위의 산이 자리를 알맞게 감싸 안아 기운이 흩어지지 않고 잘 갈무리되는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청룡과 백호가 좌우에서 팔을 두르듯 자리를 보듬고, 현무가 든든히 뒤를 받치며, 주작이 앞에서 트인 자리를 마주해 주는 짜임을 으뜸으로 보았습니다. 특히 청룡과 백호의 산줄기가 한 겹에 그치지 않고 여러 겹으로 자리를 감싸 안을수록 바람을 잘 막아 주고 기운을 깊이 머무르게 하는 명당이라 전통적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사신사의 짜임은 옛 도읍의 자리 잡기에서도 살필 수 있습니다. 조선의 도읍으로 정해진 한양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하여, 북쪽으로 든든한 산을 등지고 좌우와 앞으로 산이 감싸 도는 형세를 갖춘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도성을 정하던 이들은 뒤를 받치는 산을 현무로, 동서로 뻗은 산줄기를 청룡과 백호로, 앞쪽의 산을 주작으로 헤아려 자리를 살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보면 사신사는 단순한 상징에 머물지 않고, 산과 물에 둘러싸인 자리가 어떻게 사람을 품어 왔는가를 읽어 내는 오랜 안목의 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자리가 사신사를 완전하게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어느 한 방위의 산세가 약하거나 트여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옛사람들은 부족한 곳을 인위적으로 메워 자리를 북돋우려 하였는데, 이러한 관념을 비보(裨補)라 불렀습니다. 이를테면 백호 쪽이 허하면 그 자리에 숲을 가꾸거나 둑을 쌓고, 물길이 곧장 빠져나가는 곳에는 나무를 심어 기운이 흩어지는 것을 누그러뜨리려 하였습니다. 이는 사신사가 단지 타고난 형세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모자란 자연을 사람의 손길로 보듬어 조화를 꾀하려 한 전통적 사고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사신사가 자리를 감싸는 까닭은 결국 그 한가운데 기운이 맺힌다고 여겨진 혈을 보호하기 위함이니, 사신사와 명당과 혈은 서로 떼어 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한 짜임으로 여겨졌습니다.
오늘날 사신사는 길흉을 점치는 부호로만이 아니라, 옛사람들이 산세를 살펴 안온한 삶터를 고르던 지혜를 담은 전통적 공간 인식으로 다시 읽히고 있습니다. 사방을 산이 감싸 바람을 다스리고 햇빛과 물길을 헤아린 그 안목 속에는, 자연의 품 안에 깃들어 살고자 한 오래된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