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밤 열 시, 냉장고 문을 열고 잠시 서 있었습니다. 야채칸 구석에서 물러진 애호박 하나, 뒷줄에서 유통기한이 닷새 지난 두부 한 모, 그리고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반쯤 남은 파프리카. 셋을 합치면 6천 원 남짓입니다. 별것 아닌 금액 같지만, 이 장면이 일주일에 한 번씩 반복되면 한 달에 2만 4천 원, 1년이면 29만 원이 음식물 쓰레기봉투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정작 저녁에 먹을 것은 없어서 배달 앱을 켭니다.
장보기 예산 이야기는 대개 "덜 사라"로 시작하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문제는 많이 사는 게 아니라 무엇을 얼마에 샀는지 모르고, 산 것을 어디에 뒀는지 잊고, 그래서 또 사는 데 있습니다. 예산은 그 흐름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도구일 뿐입니다. 오늘은 예산 숫자를 정하는 법부터 단가 읽는 법, 냉장고 재고를 관리하는 아주 단순한 방법, 그리고 매번 반복되는 낭비의 유형까지 순서대로 적어 보겠습니다.
예산 숫자부터: 지난 두 달의 실제 지출을 먼저 봅니다
"1인 가구 식비는 얼마가 적당한가요"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사는 지역, 요리 빈도, 외식 비중이 전부 다르니까요. 그래서 남의 기준 대신 내 기록에서 시작합니다. 카드 앱과 은행 앱에서 지난 두 달 동안 마트, 편의점, 온라인 식료품, 시장에서 쓴 돈을 전부 더해 보세요. 배달과 외식은 따로 뺍니다. 이건 식비이긴 하지만 장보기 예산과 성격이 달라서 섞으면 어느 쪽이 문제인지 안 보입니다.
제가 처음 계산했을 때 혼자 사는 한 달 장보기 지출이 38만 원이었습니다. 편의점이 그중 9만 원이었고요. 그 숫자를 보고 나서야 "왜 매달 돈이 없지"의 답이 나왔습니다. 첫 달 예산은 실제 지출의 85% 정도로 잡는 게 무난합니다. 38만 원이면 32만 원. 너무 확 줄이면 2주 만에 포기하게 되고, 그대로 두면 바뀌는 게 없습니다.
그 32만 원을 주 단위로 쪼갭니다. 한 달을 4.3주로 보면 주당 약 7만 4천 원입니다. 월 예산은 20일쯤 되면 감이 안 오지만, 주 예산은 "이번 주 남은 돈 2만 원"처럼 바로 와닿습니다. 가계부 앱을 쓰든 메모장에 쓰든, 주 단위로 남은 금액이 보이게만 하면 됩니다.
단가 읽기: 가격표 아래 작은 글씨
마트 가격표 아래에는 대개 "100g당 ○○원" 또는 "1개당 ○○원"이 작게 적혀 있습니다. 이 한 줄이 장보기에서 가장 쓸모 있는 정보인데 대부분 지나칩니다. 같은 브랜드 우유가 930ml 2,980원과 1.8L 5,480원이면 100ml당 각각 320원과 304원입니다. 큰 게 5% 정도 싸지만, 혼자 살면서 일주일에 우유 700ml를 마신다면 1.8L짜리는 절반이 상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면 실제 단가는 두 배가 됩니다. 단가는 "산 양"이 아니라 "먹은 양"으로 나눠야 진짜 단가입니다.
자주 사는 품목 10개 정도는 단가를 외워 두면 좋습니다. 저는 아래처럼 표를 하나 만들어서 휴대폰 메모에 넣어 두었습니다. 마트 이름은 생략했습니다. 숫자는 제가 다니는 곳 기준이라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 품목 | 단위 | 보통 가격 | 이 이하면 살 만함 | 비고 |
|---|---|---|---|---|
| 계란 | 10개(특란) | 4,500원 | 3,900원 | 30개 팩은 2주 안에 다 먹을 때만 |
| 우유 | 1L | 2,900원 | 2,500원 | 유통기한 7일 이상 남은 것 |
| 두부 | 300g | 1,800원 | 1,300원 | 2+1은 3일 내 소비 계획 있을 때만 |
| 닭가슴살(냉장) | 100g | 1,200원 | 950원 | 소분 냉동 필수 |
| 양파 | 1kg | 2,800원 | 2,000원 | 망 단위가 낱개보다 40% 저렴 |
| 쌀 | 10kg | 32,000원 | 28,000원 | 도정일 한 달 이내 |
| 냉동 만두 | 1kg | 8,900원 | 6,900원 | 행사 주기 약 6주 |
| 식용유 | 1.8L | 7,500원 | 5,900원 | 1년 소비량 확인 후 |
이 표가 있으면 "1+1"이나 "타임세일" 앞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할인 딱지가 붙어 있어도 내 기준가보다 비싸면 그냥 할인이 아니라 원래 가격일 뿐입니다. 반대로 기준가 아래로 내려온 저장 식품(쌀, 식용유, 냉동식품, 통조림)은 예산 안에서 조금 더 사 둬도 손해가 없습니다. 다만 "조금 더"의 기준은 두 달치입니다. 반년치 식용유는 산패합니다.
장보기 리스트: 냉장고에서 시작해서 메뉴로 끝나기
리스트를 쓰라는 말은 누구나 하지만, 순서가 중요합니다. 마트 가서 생각나는 대로 적으면 그건 리스트가 아니라 장바구니 사본입니다.
집을 나서기 전에 냉장고와 찬장을 먼저 봅니다. 남은 것을 확인하고, 그중 이번 주에 반드시 소진해야 할 것을 두세 개 고릅니다. 그 재료를 중심으로 이번 주 저녁 메뉴 서너 개를 정합니다. 매일 다른 메뉴를 짜려고 하면 재료가 열 가지가 넘어가서 다시 낭비가 생깁니다. 저는 한 주에 메인 재료 두 가지, 예를 들어 닭가슴살과 두부를 정하고 그것으로 네 끼를 돌려 먹습니다. 그다음에야 리스트를 씁니다. 리스트에는 품목만 적지 말고 필요한 양까지 적습니다. "양파"가 아니라 "양파 3개". 양이 적혀 있어야 망 단위로 살지 낱개로 살지가 결정됩니다.
리스트에 없는 것을 마트에서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담지 않고 메모의 맨 아래 "다음 주 후보" 칸에 적습니다. 정말 필요했다면 다음 주에도 생각날 것이고, 대부분은 잊힙니다. 이 한 줄이 충동구매를 가장 확실하게 줄여 줬습니다.
장보는 요일과 시간도 영향이 큽니다. 배고플 때 가면 과자와 빵이 늘고, 주말 오후에 가면 시식 코너와 사람 때문에 판단이 흐려집니다. 저는 평일 저녁 식사 후에 갑니다. 그리고 마감 한 시간 전에는 신선식품 할인 스티커가 붙기 시작하는데, 그날 저녁이나 다음 날 먹을 것만 산다는 조건이면 꽤 도움이 됩니다.
냉장고 재고 관리: 종이 한 장이면 됩니다
앱도 많고 라벨기도 팔지만, 저한테 끝까지 남은 방법은 냉장고 문에 붙인 A5 종이 한 장이었습니다. 위쪽 절반에는 "지금 있는 것", 아래쪽 절반에는 "이번 주에 먹어야 하는 것"을 씁니다. 장을 보고 온 날 5분 동안 위쪽을 고쳐 쓰고, 재료를 꺼내 쓸 때마다 연필로 줄을 긋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냉장고 안 배치에는 규칙 두 개만 둡니다. 먼저 산 것을 앞으로, 새로 산 것을 뒤로. 그리고 "이번 주 소진" 재료는 눈높이 칸 한 곳에 몰아 둡니다. 야채칸 바닥과 뒷줄은 음식이 잊히는 자리입니다. 거기에는 오래 두어도 괜찮은 것만 넣습니다. 당근, 양배추, 껍질째 둔 감귤류, 단단한 치즈 같은 것들입니다. 반대로 잎채소와 두부, 개봉한 소스류는 무조건 앞줄입니다.
냉동실은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냉동은 "썩지 않으니까 괜찮다"는 마음 때문에 오히려 재고가 쌓입니다. 냉동한 날짜를 마스킹테이프에 적어 붙이고, 석 달 넘은 것은 이번 주 메뉴에 강제로 넣습니다. 냉동실 재고가 반 이상 차 있으면 그 주는 고기와 냉동식품을 아예 사지 않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 주 예산은 그만큼 남습니다.
흔한 낭비 유형과 고치는 법
몇 년 동안 제가 반복한 실수와 주변에서 본 것을 모아 보면 유형이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 대용량 채소. 시금치 한 단, 상추 한 봉지는 혼자 살면 절반이 시듭니다. 손질된 소량 팩이 100g당은 비싸지만 버리는 게 없어서 실제 단가는 더 쌉니다.
- "건강해지겠다"고 산 재료. 아보카도, 샐러드용 새싹채소, 그릭요거트. 먹는 습관이 없는 상태에서 사면 열에 여덟은 버려집니다. 습관이 생긴 뒤에 사는 게 순서입니다.
- 소스와 양념의 중복. 굴소스 두 병, 뜯지 않은 고추장 두 통. 찬장을 안 보고 장을 봐서 생깁니다. 리스트를 쓰기 전에 찬장을 보는 이유입니다.
- 편의점 "간단히". 아침 삼각김밥과 커피 4,000원은 한 달이면 8만 원입니다. 이걸 장보기 예산에서 분리해서 보면 어느 쪽에서 새는지 확실해집니다.
-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혼동. 유통기한은 판매 가능 기한이고, 냉장 보관을 잘한 우유나 두부는 며칠 지나도 대부분 괜찮습니다. 냄새와 상태를 보고 판단하는 습관이 생기면 멀쩡한 걸 버리는 일이 줄어듭니다.
- 온라인 무료배송 맞추기. 4만 원 이상 무료배송을 맞추려고 필요 없는 6천 원어치를 담는 건 배송비 3천 원을 아끼려고 6천 원을 쓰는 일입니다.
한 끼 단가로 배달과 비교해 보기
장보기 예산이 잘 지켜지지 않는 진짜 이유는 마트가 아니라 배달 앱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밥 한 끼 단가를 대략이라도 계산해 둡니다. 닭가슴살 200g(2,400원), 두부 반 모(900원), 양파 반 개(200원), 쌀 한 공기(400원), 양념과 기름(300원)을 더하면 한 끼에 4,200원 정도입니다. 같은 저녁을 배달로 시키면 최소 주문 금액과 배달비를 합쳐 1만 4천 원에서 1만 8천 원이 나갑니다. 차이는 한 끼에 1만 원 안팎, 일주일에 세 번이면 12만 원입니다.
이 숫자를 안다고 배달을 끊게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오늘은 피곤하니까"가 얼마짜리 결정인지는 알게 됩니다. 저는 주 예산과 별도로 배달 한도를 월 6만 원, 대략 네 번으로 정해 두고, 그 안에서는 죄책감 없이 시킵니다. 한도를 넘기는 주에는 냉동실에 소분해 둔 닭가슴살과 밥이 있는지 먼저 확인합니다. 그것만으로 "차라리 시키자"가 절반쯤 줄었습니다. 장보기 예산과 배달 예산을 따로 두는 이유는 한쪽이 무너졌을 때 다른 쪽까지 같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온라인 장보기와 오프라인의 역할 나누기
요즘은 온라인이 더 싼 품목이 많습니다. 쌀, 생수, 세제, 냉동식품처럼 무겁고 상하지 않는 것은 온라인이 낫습니다. 반면 채소와 과일, 정육은 직접 보고 고르는 게 실패가 적습니다. 저는 월초에 온라인으로 저장 식품을 한 번에 사고, 신선식품은 매주 오프라인으로 삽니다. 온라인 주문은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하루 뒤에 결제하는 습관을 들이면 절반쯤은 빠집니다.
정기배송은 조심해서 씁니다. 우유나 계란처럼 소비량이 일정한 것만 걸고, 그 외는 매번 주문합니다. 정기배송은 편하지만 소비량이 줄어도 계속 오기 때문에 냉장고 재고를 다시 쌓이게 만듭니다.
첫 4주 동안 실제로 해 볼 것
처음부터 전부 하려고 하면 2주 만에 무너집니다. 순서를 정해 두면 훨씬 수월합니다. 1주차에는 지난 두 달 장보기 지출을 합산하고 주 예산 하나만 정합니다. 2주차에는 냉장고 문에 종이를 붙이고 있는 것만 적습니다. 3주차부터 리스트를 쓰고, 4주차에 단가표를 만듭니다. 한 주에 습관 하나씩이면 부담이 거의 없고, 앞 주의 습관이 다음 주의 재료가 됩니다.
한 달 뒤에 두 가지를 봅니다. 주 예산을 몇 주나 지켰는지, 그리고 버린 음식이 몇 번이었는지. 저는 첫 달에 4주 중 2주만 예산 안이었고 버린 게 5번이었습니다. 석 달째에는 4주 중 3주, 버린 게 1번이었습니다. 지출은 38만 원에서 27만 원으로 내려왔고요.
오늘 밤 할 일은 하나입니다. 냉장고를 열고, 이번 주 안에 먹지 않으면 버리게 될 것 세 가지를 꺼내 맨 앞줄 눈높이 칸에 옮겨 놓으세요. 내일 저녁 메뉴는 그 셋 중 하나로 정하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