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 2리터 물병
한동안 회사 책상 위에 2리터짜리 물병을 두고 지낸 적이 있습니다. 눈금마다 시간이 적혀 있는, 한때 유행하던 그 물병입니다. 오전 10시까지 첫 눈금, 정오까지 둘째 눈금. 처음 며칠은 뿌듯했는데, 사흘째부터 화장실을 한 시간마다 들락거리게 되었고, 오후 눈금이 밀리면 저녁에 몰아서 마시다가 밤중에 깨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2주쯤 지나 물병은 서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들었던 의문이 이 글의 출발입니다. 2리터는 어디서 나온 숫자이고, 나한테 맞는 숫자인가. 찾아보니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고, 동시에 생각보다 마음 편한 결론이었습니다.
"하루 8잔"은 어디서 왔나
하루 8잔, 약 2리터라는 말은 1945년 미국의 한 영양 권고에서 "성인은 하루 약 2.5리터의 물이 필요하며, 그 대부분은 음식에 이미 들어 있다"고 적은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뒷부분, 즉 "음식에 이미 들어 있다"는 문장이 떨어져 나가고 앞의 숫자만 남아 돌아다닌 셈입니다.
현재 여러 나라의 권고를 보면 "물"이 아니라 "총수분"이라는 말을 씁니다. 총수분은 마시는 물, 커피와 차 같은 음료, 그리고 음식에 든 수분을 전부 합한 양입니다. 성인 남성 기준 하루 총수분 약 2.5~3.7리터, 여성 약 2.0~2.7리터 정도가 자주 인용되는 범위이고, 이 중 20~30%는 음식에서 옵니다.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 과일 한 조각에도 물이 상당히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순수하게 "마시는 물"로 따지면 대략 1.2~2리터 사이 어딘가가 되고, 체격·활동량·기온에 따라 이 폭이 꽤 넓습니다. 2리터는 틀린 숫자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맞는 숫자도 아닙니다.
얼마나 필요한지는 몸이 알려 줍니다
건강한 성인에게 가장 믿을 만한 지표는 두 가지입니다. 목마름과 소변 색.
목마름은 오랫동안 "느낄 때는 이미 늦다"는 말로 폄하되어 왔지만, 건강한 사람의 갈증 감각은 꽤 정확합니다. 체내 수분이 1~2% 정도 줄면 목이 마르기 시작하고, 그 정도는 물 한두 잔으로 바로 회복됩니다. 예외는 노년층과 아주 어린 아이, 그리고 격렬한 운동 중인 사람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갈증 감각이 둔해지므로 시간을 정해 마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소변 색은 더 직관적입니다. 옅은 노랑에서 밀짚색이면 적당하고, 진한 노랑이나 갈색에 가까우면 부족합니다. 거의 투명하면 필요 이상으로 마시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 첫 소변은 원래 진하니 낮 시간에 보는 게 맞습니다. 비타민 B군 보충제를 먹으면 소변이 형광 노랑이 되는데, 이건 수분과 상관없습니다.
| 소변 색 | 뜻 | 할 일 |
|---|---|---|
| 거의 투명 | 필요 이상 섭취 | 억지로 마시지 않기 |
| 옅은 노랑~밀짚색 | 적당 | 그대로 유지 |
| 진한 노랑 | 조금 부족 | 한두 잔 마시기 |
| 호박색~갈색 | 상당히 부족 또는 다른 원인 | 물 마시고, 지속되면 진료 |
소변 횟수도 참고가 됩니다. 건강한 성인은 낮 동안 대략 3~4시간에 한 번, 하루 6~8번 정도 화장실에 가는 게 보통입니다. 하루 종일 두세 번뿐이라면 부족한 쪽이고, 한 시간마다 간다면 책상 위 2리터 물병처럼 필요 이상 마시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밖에 오후에 이유 없이 머리가 띵하거나, 입술이 트고, 집중이 흐려지는 것도 수분 부족의 흔한 신호입니다. 다만 이런 증상은 잠 부족, 카페인, 공복에서도 똑같이 나오니 물부터 한 잔 마셔 보고 판단하는 정도가 맞습니다.
커피와 차는 물로 치나요
오랫동안 "커피는 이뇨작용 때문에 마신 만큼 빠져나간다"고들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서너 잔 정도의 습관적 카페인 섭취에서는 이뇨 효과가 크지 않아, 커피 한 잔의 수분 대부분이 몸에 남는다는 쪽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매일 마시는 사람은 카페인에 어느 정도 적응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커피, 차, 우유, 국물은 전부 총수분에 들어갑니다.
술은 다릅니다. 알코올은 항이뇨호르몬을 억제해 실제로 마신 양보다 더 많은 소변을 만듭니다. 맥주 500ml를 마시면 물 500ml를 마신 것보다 몸에 남는 수분이 적습니다. 술자리에선 술 한 잔에 물 한 잔을 곁들이는 습관이 다음 날 아침을 상당히 다르게 만듭니다.
탄산음료와 주스도 수분이긴 하지만 당이 많아 하루 섭취량의 주력으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탄산수는 당이 없다면 물과 같습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것
여름에는 땀으로 나가는 양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한여름 야외에서 한 시간 걸으면 500ml~1리터가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이때는 목마르기 전에 조금씩 자주 마시는 편이 낫고, 한 시간 넘게 땀을 흘렸다면 물만 마시기보다 나트륨이 든 것을 함께 먹습니다. 이온음료가 아니어도 됩니다. 물에 소금 한 꼬집, 또는 국물이나 짭짤한 간식이면 충분합니다. 땀을 많이 흘린 뒤 물만 2~3리터 들이켜면 오히려 혈중 나트륨이 떨어져 두통과 메스꺼움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겨울에는 반대로 목이 덜 마릅니다. 기온이 낮으면 갈증 감각이 둔해지는데 호흡과 피부로 나가는 수분은 여전하고, 난방 때문에 실내 습도는 20~30%까지 떨어집니다. 그래서 겨울에 오히려 입술이 트고 아침 두통이 잦습니다. 따뜻한 물이나 보리차를 보온병에 담아 두면 차가운 물보다 훨씬 자주 손이 갑니다. 실내에 젖은 수건을 걸거나 가습기를 두는 것도 수분 유지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환절기에는 감기가 잦은데, 열이 나면 수분 손실이 늘어납니다. 체온이 1도 오를 때마다 필요한 수분이 대략 10% 정도 늘어난다고 보면 됩니다. 설사나 구토가 있을 때는 물만이 아니라 전해질을 함께 보충하고, 하루 이상 지속되면 진료를 받습니다.
운동할 때의 요령
한 시간 이내의 가벼운 운동이라면 운동 전 물 한 컵, 운동 후 목마른 만큼 마시면 됩니다. 한 시간 넘게 땀 흘리는 운동, 또는 더운 날의 운동이라면 20분마다 150~250ml씩 나누어 마시고, 끝나고 나트륨을 보충합니다.
자기 땀 양을 알고 싶다면 한 번 재 보면 됩니다. 운동 전후 맨몸 체중을 재고, 그 사이 마신 물의 양을 더합니다. 운동 전 60kg, 운동 후 59.3kg, 사이에 500ml를 마셨다면 땀으로 1.2kg, 즉 약 1.2리터가 빠진 것입니다. 이 수치를 한 번 알아 두면 그 뒤로는 감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거나 운동 강도가 달라지면 한 번쯤 다시 재 보는 정도면 충분하고, 매번 잴 필요는 없습니다.
운동 후 체중이 운동 전보다 2% 이상 줄었다면 다음 운동 땐 중간에 더 마셔야 하고, 늘었다면 너무 많이 마신 것입니다.
더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
같은 성인이라도 상황에 따라 필요량과 주의점이 달라집니다.
- 임신·수유 중: 혈액량이 늘고 모유로 나가는 양이 있어 평소보다 하루 300~700ml 정도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수유 직전이나 직후에 한 컵을 습관으로 두면 편합니다.
- 노년층: 갈증을 늦게 느끼고, 화장실 가기 번거로워 일부러 덜 마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점심·저녁·오후 간식 시간에 한 컵씩, 시간을 정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다만 심부전이나 신장 질환으로 수분 제한을 받는 분은 의사가 정한 양을 따릅니다.
- 어린아이: 몸에 비해 체표면적이 넓어 더위에 더 빨리 탈수됩니다. 놀이 중 30분마다 한 번씩 물을 권하고, 소변 횟수가 평소보다 눈에 띄게 줄면 살핍니다.
- 약을 복용 중인 경우: 이뇨제, 일부 혈압약, 변비약은 수분 균형에 영향을 줍니다. 복약 안내문에 수분 관련 문구가 있으면 그대로 따릅니다.
- 야외 근무자: 여름 건설 현장이나 배달처럼 장시간 땀을 흘리는 일이라면 시간당 500ml 안팎을 나누어 마시고, 점심에 국물이나 짭짤한 반찬으로 나트륨을 보충합니다.
어떤 물을 마셔야 하느냐는 질문도 자주 받습니다. 수돗물, 정수기, 생수 중 무엇이든 수분 공급 면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는 맛과 비용, 편의입니다.
| 종류 | 대략적 비용 | 특징 |
|---|---|---|
| 수돗물(끓이거나 그대로) | 1리터당 1원 미만 | 가장 저렴, 염소 냄새는 끓이거나 하룻밤 두면 사라짐 |
| 정수기(렌털) | 월 1만 5천~4만 원 | 편리, 필터 교체 주기(3~6개월) 지키기 |
| 생수(2L 6개들이) | 리터당 300~700원 | 휴대 편리, 플라스틱 배출 많음 |
| 보리차·옥수수차 | 티백 개당 100원 안팎 | 맛이 있어 겨울에 섭취량 늘리기 좋음 |
수돗물 맛이 거슬리면 유리병에 받아 냉장고에 하룻밤 두는 것만으로 꽤 달라집니다. 정수기는 필터를 제때 안 바꾸면 오히려 세균이 늘 수 있으니 교체 알림을 켜 둡니다. 생수는 직사광선이 드는 곳에 오래 두지 않습니다. 여름철 차 안에 며칠 둔 생수는 맛도 변하고 용기도 상하니 그날 마실 만큼만 싣습니다.
흔한 오해 몇 가지
- "물을 많이 마시면 피부가 좋아진다": 수분이 부족하면 피부가 건조해지는 건 맞지만, 충분한 상태에서 더 마신다고 더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남는 물은 소변으로 나갑니다.
- "물을 많이 마시면 살이 빠진다": 식전에 물 한 컵을 마시면 식사량이 약간 줄어드는 효과는 관찰되지만, 물 자체가 지방을 태우지는 않습니다.
- "식사 중에 물을 마시면 소화에 나쁘다": 근거가 약합니다. 위산은 물 한 컵에 무력화될 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다만 국물까지 합쳐 한 끼에 1리터 가까이 마시면 더부룩할 수는 있습니다.
- "찬물은 몸에 나쁘다": 온도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찬물은 한 번에 많이 마시기 어렵고, 겨울엔 손이 덜 갑니다. 마시기 편한 온도가 좋은 온도입니다.
- "많이 마실수록 좋다": 아닙니다. 건강한 신장은 시간당 약 0.8~1리터까지 처리하지만, 그 이상을 짧은 시간에 마시면 저나트륨혈증이 올 수 있습니다. 마라톤 완주자나 물 마시기 내기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목마르지 않은데 억지로 마시는 것은 대부분 필요 없습니다.
- "하루 8잔은 커피 말고 순수한 물이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총수분이 기준이고, 커피와 차도 포함됩니다.
억지로 마시지 않고도 충분히 마시는 법
책상 위 2리터 물병이 실패한 이유는 "목표량"을 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대신 "마시는 순간"을 정해 두었습니다.
- 일어나서 한 컵(200~250ml). 밤새 호흡과 땀으로 300~500ml쯤 빠져나간 뒤라 아침 물은 대체로 잘 들어갑니다.
- 매 식사에 한 컵. 국이 있으면 반 컵.
- 커피 마실 때 물 한 컵을 같이. 카페에서 주는 물을 남기지 않는 것만으로 하루 두세 컵이 됩니다.
- 외출할 때 500ml 병 하나. 다 마시면 됐고, 못 마셔도 괜찮습니다.
- 자기 전엔 목마르면 반 컵 정도만. 밤중에 깨는 게 수분보다 수면에 더 손해입니다.
이 정도면 하루 1.5리터 안팎이 저절로 됩니다. 물통은 350~750ml짜리가 들고 다니기 좋고, 가격은 1만~3만 원 사이면 충분합니다. 보온병이면 겨울에 따뜻한 물을 담을 수 있어 사계절 하나로 씁니다.
서랍에 들어간 2리터 물병은 지금 화분에 물 줄 때 씁니다. 눈금이 있어 그 용도로는 꽤 편합니다. 제 책상 위엔 500ml 보온병 하나가 있고, 오후 3시쯤 한 번 채우면 퇴근 전에 비어 있습니다.
